[미술] 마사초 Ser Giovanni 야 Mone Cassai
본문 바로가기
공부/예술

[미술] 마사초 Ser Giovanni 야 Mone Cassai

by 호아Hoa 2019. 7. 5.

마사초 Ser Giovanni 야 Mone Cassai

사진 출처 : 네이버

마사초로 불리는 세르 조반니 디 모네 카사이는 1401년 이탈리아 산조반니 발다르노에서 태어났습니다. 몇몇 자료를 제외하고는 그의 생애와 예술가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거의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 그는 1418년 무렵 피렌체의 화가로 알려져 있고 1422년 ‘의사 및 특수 직종의 조합’이라는 이 도시의 화가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1424년 그의 이름은 피렌체 화가 대표단 명부에 오르게 됩니다. 1427년 초에 그는 피사에 있다가 6개월 뒤 다시 피렌체에, 1428년에는 로마에 머무릅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일반적으로 마사초가 최초로 주문받은 작품은 1422년으로 날짜가 기입된 <산조베날레의 세폭화>로 간주됩니다. 아마도 이 세폭화의 생성 연도와 같은 해에 마사초는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의 헌당식>이라는 *프레스코화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427년 초 비로소 마사초는 산타마리아 노벨라에 있는 <성삼위일체> 프레스코화를 그립니다. 마사초의 <성삼위일체> 프레스코화는 실험적이고 과도기적인 시기였던 초기 *르네상스 10년 동안에 창작되었습니다. 원근법 삼총사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초가 공동 작업으로 완성했을 <성삼위일체>는 19세기 말까지는 완전한 원근법적 재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사진 출처 : 네이버

마사초가 마솔리노의 제자였다는 점에서부터 그에 대한 이해를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1424년부터 1428년까지의 공동 작업이 착수되던 해, 마솔리노의 회화 양식 속에는 젊은 마사초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마사초가 5년 전에 이미 헌당식 프레스코화를 그렸던, 브란카치 예배당 그림은 두 개의 부분으로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지금은 파괴된 아치 모양의 천장을 가진 <베드로의 생애>가 담긴 프레스코 벽화를 마솔리노는 1425년까지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은1480~1485년에 필리피노 리피에 의해 완성됩니다. 1428년 봄 마솔리노는 로마로 가고 마사초는 얼마 뒤에 그를 따릅니다. 로마에 도착한 후 몇 주 뒤에 마사초는 생을 마칩니다. 그에 의해 착수되어, 나폴리, 런던, 필라델피아에서 소장되었던 <산타마리아 마조레를 위한 세폭화>를 완성시킨 사람은 바로 마솔리노였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프레스코(fresco)

‘신선한’ 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fresco'에서 유래. 벽화 기법으로 아직 축축한 회벽 위에 색을 칠하게 된다.

 

※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브루넬레스키는 오로지 피렌체에서만 활동했다. 인문주의적 교육을 장려했던 그는 처음에는 조각가로 활동했다. 1420년에 산로렌초 교회의 건축을 시작하고, 1429년 산타크로체 교회의 파치 예배당을 지었다. 1434년에는 아르노 강가에 산토스피리토가 이어졌다. 그는 기둥이 없는 구조물과 고대의 성벽 기술 도입을 통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고안해 냈다.

 

※ 도나텔로(Donatello)

도나텔로는 조각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자였다. 그는 고대 양식을 따른 최초의 입상이자, 최초의 세계적인 초상화라고 할ㅇ 수 있는 새 시대의 웅장한 기마상인, <가타멜라타>를 제작했다. 특히 도나텔로는 피렌체에 머물며 피렌체를 위해서 활동했다. <다윗>과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로써 도나텔로는 독립적이고 자의식이 강한 도시 공화국인 피렌체의 우의상을 창조해냈다.

 

※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로, 이탈리아어의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중세를 극복하고 고대의 예술을 부흥시키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는 대략 1420년부터 1600년까지를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1500년까지를(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 1530년까지를(로마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 르네상스, 그리고 16세기 말까지를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마니에리슴으로 구분한다. 르네상스는 새 시대적인 인간상과 이성적인 자연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상을 창조했다. 예술가들은 수공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회화에 있어서 최상의 목표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토대로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