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렘브란트 하르멘스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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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렘브란트 하르멘스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

by 호아Hoa 2019. 6. 19.

렘브란트 하르멘스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

사진 출처 : 네이버

렘브란트 하르멘스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은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덴(Leiden)에서 태어났습니다. 학문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그는 라틴어 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레이덴에 있는 어느 화가의 도제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암스테르담(Amsterdam)의 피터 라스트만(Piter Lastman)의 도제가 되었습니다. 1626년에 그는 다시 레이덴으로 돌아가 얀 리벤스(Lievens de Oude)와 함께 공방에 들어갔습니다. 이무렵 뮌헨에 있는 작은 크기의 <자화상>이 제작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631년 렘브란트(Rembrandt)는 암스테르담으로 갔습니다. 그는 이후 몇 년 동안 화상인 헨드릭 반 오이렌부르흐를 위해 일했습니다. 렘브란트(Rembrandt)는 1635년 경 루벤스로 대표되는 플랑드르적인 *바로크 양식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수난 연작의 일부로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 강하>, <이삭의 제물>, <다나에> 그리고 삶의 기쁨을 발산하는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1639년경 렘브란트(Rembrandt)는 암스테르담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로 우뚝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야경>을 의뢰받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아내 사스키아가 죽던 해에 완성되었고, 1642년 손상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 시기 이후 렘브란트(Rembrandt)는 ‘불분명한’ 회화 방식과 어둡고 절제된 색채를 통해 따뜻한 느낌이 나는 갈색톤과 빨간색 톤이 우세하던 당시의 유행을 벗어납니다. 또한 1630년대의 플랑드르적인 요소들로부터 벗어납니다. 빛과 색채는 그에게 더 이상 극적 감흥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다만 정신적인 진행 과정, 즉 심리묘사에 이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렵 <성 가족>, <목욕하는 수잔나>, <엠마오의 그리스도>가 완성되었습니다.

1650년대 초반 렘브란트(Rembrandt)는 자신의 드로잉 작품이 잘 팔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부채 때문에 1657년경 집과 미술품들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렘브란트(Rembrandt)는 은거 생활을 시작했으며 1655년경에는 <얀 식스의 초상화> , <도살된 황소>, <야곱의 축복>을 제작했고, 1666년경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이삭과 레베카>를 그렸습니다.

렘브란트(Rembrandt)는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합니다.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소묘에 있어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의 판화 작품들은 가톨릭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회 제단화에 있어서도 모범에 됩니다. 대표작으로 <에케 호모>, <100 굴덴짜리 지폐>, <세 개의 십자가>와 같은 대작들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렘브란트(Rembrandt)의 <야경>은 형식과 초상학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작품의 전형입니다. 렘브란트(Rembrandt)는 이 그림으로 초상화 또는 단체 초상화를 역사로 승격시킨 역할을 하였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바로크

‘불규칙한’이란 뜻의 포르투갈어 ‘barocco'에서 유래.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유럽 전역과 그 식민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 미술의 모든 장르를 포함하는 마지막 양식이다. 바로크의 주요 특징은 힘이 넘치게 움직이는 역동적인 형태와 빛과 음영의 표현을 증대시키는 것 등이다(강한 명암 대비). 바로크의 출발점은 로마였으며, 거기에서 카라바조는 1600년경 *마니에리슴에서 벗어난다. 이 양식은 반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처음에 가톨릭 국가들 사이에 퍼졌고, 나중에는 ’안정된‘ 형식으로 신교도 국가들에도 퍼졌다. 단, 시민적인 네덜란드의 미술만은 독립적으로 머물렀다.

 

※ 마니에리슴

후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사조. 마니에리슴에서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주의는 의식적으로 제거되고, 종종 그 반대의 면이 추구되기도 했다. 그 특징은 인간의 신체를 길게 늘여 묘사하는 점, 복잡한 구성 그리고 인위적인 채색 등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개념은 극도로 섬세하고 정제된 모든 형태의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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