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 Jan Vermeer van Delft
오하네스 베르메르는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출생했습니다. 그가 화가의 길을 택하게 된 데에 강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바로 직조공이자 미술상이었던 아버지였습니다. 베르메르는 델프트의 화가인 레오나르드 브라메르로부터 시사받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그는 또 다른 델프트의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 밑에서 도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1653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델프트의 화가 길드에 가입하여 1662년과 1670년경에는 대표 책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략 1657년까지의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역사화가로서의 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비교적 큰 크기로 성경이나 신화, 고대와 근대의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가 하면, 1656년으로 날짜가 기록된 <중매쟁이>와 같은 풍속화도 그렸습니다. 베르메르는 이탈리아의 미술과 카라바조 화풍의 디르크 반 바부렌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중매쟁이>는 렘브란트의 명암법을 사용하여 그렸습니다. 그것은 거의 실내 장면으로만 구성된 작품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1650년대 초부터 델프트에 살고 있던 피터 데 후흐의 영향하에, 베르메르의 빛과 공간 처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빛은 명료해진 공간 속을 한결같이 흐르고 전경에 배치되었던 인물은 이제 중경이나 배경으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초기의 예로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 <포도주 한 잔>, <우유를 따르는 하녀>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자신의 고향을 사실주의적인 기법의 풍경화에 담았는데, <델프트의 거리>와 <델프트 풍경>이 그것입니다. 1660년대 중반에 베르메르의 양식은 완전히 무르익었습니다. 그는 <회화 예술>로써 자신의 화가로서의 직업을 우의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음악 수업>과 <삼중주>로 음악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특히 <편지를 읽는 여성>, <연애편지> 등의 편지를 소재로 한 작품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1660년대 말의 <천문학자>와 <지리학자>는 특별한 경우로서 남자 혼자 등장하고, 학자가 묘사된 베르메르의 유일한 작품들입니다. 1670년대에는 다시금 음악을 소재로 한 <기타를 연주하는 여인>, <앉은 자세로 또는 선 자세로 버지널을 연주하는 여인> 등을 완성합니다. 오랜 금욕의 시간을 보낸 뒤, 베르메르는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신앙의 알레고리>에서 다시 역사화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것으로 확실하게 파악되는 전체 작품 수는 대략 35점으로 매우 빈약하지만,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가장 중요한 *풍속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풍속화(Genre, Genre Painting)
18세기 이래로, 일상 생활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과장 없이 표현한 회화를 가리킨다. 풍속화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민 미술 속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풍속화는 18세기 궁정 문화에도 등장하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사회적인 고발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 베르메르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구성의 보조 도구로서, 실내의 모습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 베르메르는 카메라 옵스쿠라(암실 장치)를 사용했다. 전체의 공간, 가구, 인물 등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원근법적으로 파악되고 축약되어 있다. 그는 실내 공간을 표현함에 있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묘사했다. 그는 마치 ‘사진과 같은’ 그림들을 그려냈다. 그 그림들은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17세기의 한 화가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고의 경지였다.
※ 베르메르 활동 시절 네덜란드 미술시장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은 익명의 미술 시장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러므로 폭넓은 관중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들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았다. 1676년에 스텐의 그림 값은 15 굴덴(한화 약 18000원)으로 책정되었다. 그것은 암스테르담의 숙련된 노동자가 2주 동안 일하고 받는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몇몇 화가들의 수입은 상당히 좋았다. 그들은 대개 ‘고상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베르메르 역시 평생 동안 재정적인 어려움과 씨름해야 했다.
'공부 >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 렘브란트 하르멘스 반 린(Rembrandt Harmensz. van Rijn) (0) | 2019.06.19 |
---|---|
[미술]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0) | 2019.06.18 |
[미술] 이아생트 리고 Hyacinthe Rigaud (0) | 2019.06.16 |
[미술]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0) | 2019.06.15 |
[미술]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Giovanni Battista Tiepolo (0) | 2019.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