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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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by 호아Hoa 2019. 6. 8.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사진 출처 : 네이버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1774년 독일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788년 미술 활동을 시작한 그는 2년 후에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에서 소묘를 전공하고 1794년에는 코펜하겐 미술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계속했습니다. 1798년 프리드리히는 드레스덴에 정주하고, 1799년에 한 전시회에 참가했습니다. 1801년경에 그는 다시 그라이프스발트로 돌아가서 1년 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뤼겐을 방문하였고, 필립 오토룽에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805년 ‘바이마르의 예술 동지’에게 보냈던 두 점의 그림이 괴테의 제안으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1807년경 그는 보헤미아 북부 지방을 여행하고, <테첸의 제단화>를 자신의 집 안에 전시했습니다. 베를린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공개되었던 <바닷가에 서 있는 수도사>와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 묘지>는 1812년 <거대한 산에서의 아침>과 함께 프로이센 왕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눈 속의 거석묘>,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자들의 무덤>, <숲에 난 길> 등의 작품을 통해 프리드리히는 정치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1818년에는 가장 유명한 그림들 가운데 <안개 낀 바다를 건너는 방랑자>와 <뤼겐 섬의 백악암>이 제작되었습니다. 그 후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 <눈 덮인 수도원 묘지>, <바닷가의 월출>, <고독한 나무> 등의 작품들이 이어졌습니다. 1823년에는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클라우젠 달과 동거하며 공동으로 전시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시기 <빙해>가 제작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825년경 프리드리히는 병에 걸리고 그 체념의 순간들이 그의 그림에 나타났습니다. 색채는 더 절제되었습니다. 얼마 뒤 <눈 덮인 오두막집>이 탄생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파리의 7월 혁명의 영향으로 드레스덴에서도 일어났던 봉기에 대해 공감과 회의가 뒤섞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는 회화를 둘러싼 당대의 상황을, 즉 ‘나자렛파(종교적인 기반 위에서 회화의 혁신을 위해 노력했던 미술 사조)’의 이상화된 요구와 *비더마이어적인 것으로의 복귀, 미술 시장의 경쟁, 아카데미와 비평가의 권력 등을 부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느끼며 <드레스덴의 대 사냥터>와 <인생의 단계>를 그렸습니다.

1835년 뇌졸중을 일으킨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스케치만 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기대 속에서 명상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는 1840년에 드레스덴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의 선구적인 화가입니다. 그는 풍경화에 종교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완전히 새롭게 주관적으로 해석했으며, 독자적인 감정 세계를 반영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낭만주의(Romanticism)

18세기 말경에 탄생하여 대략 1830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성행했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처음에는 문학에서, 나중에는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이성이나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감정과 비합리성을 중요시한다. 낭만주의는 중세를 재발견하였으며, 특히 독일에서는 이것을 ‘좋았던 옛 시절’로 이상화시켰다. 낭만주의 미술에서, 특히 프리드리히와 터너에게 있어서 풍경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 고전주의(Classicism)

넓은 의미로는 그리스의 고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예술 경향을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향으로서 탄생하여 약 1770년부터 1830년까지 이어졌던 양식을 말한다. 고전주의의 기준은 고대의 예술, 특히 시대를 초월하여 유용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리스의 고대이다. 고전주의 회화와 건축의 특징은 엄격하고 분명한 구도와 단순한 형태 등이며, 무엇보다도 진지한 주제들이 다루어졌다.

 

※ 비더마이어

1815~1850년경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타난 고전주의적인 장식 양식. 제국 양식과의 구분 속에서 그 형태는 검소하고 시민적인 차원으로 축소된다. 또한 비더마이어적인 경향을 띤 낭만주의 회화와 관련지어서도 언급된다. 시민적이고 향토적인 전원의 모습이 전경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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