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고야 Francisco De Goya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는 1746년 스페인 사라고사 근교의 펜테토도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760년경 사라고사의 호세 루산으로부터 처음 미술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략 1770년까지 고야는, 나중에 그의 처남이자 궁정화가가 되는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제자로 마드리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예우는 고야가 1770년경 이탈리아를 여행하게끔 자극을 주었습니다. 고야는 주로 로마를 여행했습니다. 고야는 티에폴로와 시몽 부에, 크레조의 구성들을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첫 번째 <자화상>이 탄생했습니다.
1774년 고야는 맹스의 추천으로 궁정에 소환되었습니다. 그는 국왕의 별걸이 양탄자 공장에서 도안을 그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고야는 1780년 맹스의 방식으로 모사한 <그리스도의 책형>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야는 그때부터 종교화 분야에서 바예우를 훨씬 능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야는 곧 인기 있는 초상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왕실 가족과 고위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1786년 그는 궁정화가가 되었고 3년 뒤에는 수석화가가 되었습니다.
고야는 1792년경 병을 앓고 나서 청력을 잃었습니다. 청력을 상실한 이후, 비교적 작은 크기의 그림들과, 1799년에 발표되는 <카프리초스>를 위한 초안들을 그렸습니다. 이 시기에 고야는 알바 공작 부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1797년 그는 그녀의 전신 입상을 그렸는데, 그의 은밀한 스케치북에는 그녀를 나체로 묘사해 놓기도 했습니다. 1800년경에는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 그리고 고야의 가장 중요한 그룹 초상화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이 완성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대항한 도시 방어를 위해 고야는 1808년 사라고사로 갔습니다. 전쟁의 폐허와 만행은 1863년에 처음 공개된 <전쟁의 참화>와 <거인>의 주제기 되었습니다. 그리고 1814년에 탄생한 <1808년 5월 3일>은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운명론적인 그림입니다. 같은 시기에 <사르디네의 장례식>이 제작되었습니다. 종교재판은 변화를 강요했습니다. 고야는 연작 <투우>와 <디스파라테스>를 완성했습니다.
고야는 1820년부터 1823년까지 자식을 잡아 먹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같은 <검은 그림들>로써 후기 작품의 절정기를 이루었습니다. 1823년 페르디난드 7세는 프랑스의 도움으로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혁명의 실패에 실망한 고야는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의 보르도로 가, 1828년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고야는 현대 미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발견되어 칭송받았던 그는 20세기로 가는 전환기의 회화에 있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화가였습니다. 상징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의 화가들은 모두 자신들이 고야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내세웠습니다.
※ 인상주의(Impressionism)
‘인상, 느낌’을 뜻하는 프랑스어 ‘impression'에서 유래.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해돋이>의 제목을 따서 명명되었던 1870년대의 프랑스 미술과 그 이후의 회화 양식.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와 바르비종 화파의 풍경화에서 출발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을 즉흥적이고 현상적인 형태로 포착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빛과 대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인상주의의 특징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인 플레네르(Plein-air)와 밝은 색채 사용이다. 그리고 벨라스케스와 터너의 지식을 전제로 하여 물체의 윤곽을 용해시키는 회화 방식도 종종 사용되었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인상주의가 수용되었다. 독특한 형색의 점묘 주의 역시 인상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상징주의
1880년경 지나치게 학문화되고 상업화되어 버린 세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사조로,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죽음이나 죄악, 질병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선회하는 환상이 묘사된다. 뵈클린과 뭉크가 상징주의에 속한다. 유겐트슈틸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 사실주의(Realism)
넓은 의미로는 양식과 상관없이 현실에 충실한 묘사를 일컫는 명칭이다. 좁은 의미로는 19세기 중반경 프랑스에 등장했던, 밀레와 쿠르베의 사회 비판적인 미술 사조와 관련된다.
※ 초현실주의(Surrealism)
1920년대 초 파리의 다다에서 기인하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예술 사조. 초현실주의 회화는 형이상학적 회화로부터 결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특징은 대상들의 모순된 결합과 다의성으로, 경험이나 생각에 의한 전형은 흔들리게 된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로는 달리와 마그리트가 있다.
※ 표현주의
드레스덴의 화가 동맹 다리파가 창설되었던 1905년부터 1920년대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예술 사조. 이 개념은 1911년에 베를린의 잡지 《폭풍》의 주간 헤르바르트 발덴이 주도했다. 표현주의는 표현의 증대를 추구하기 위해, 색채를 강하게 대비시키고 형태를 단순화했다. 표현주의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는 고흐와 뭉크이다. 1910년경 *야수파와 *미래주의는 표현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표현주의의 중심지는 키르히너를 포함한 다리파 화가 그룹이 결성된 드레스덴과 베를린, 그리고 특히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속하는 *청기사파의 활동 거점인 뮌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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