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네 Giorgione
조르지 다 카스텔프랑코인 조르조네는 1477년경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스텔프랑코에서 태어났습니다. 1507년경의 단 두 가지 기록만이 그의 생애를 말해 줍니다. 한 가지는, 그가 베네치아에서 총독 궁을 위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1574년경에 불타 없어졌다는 기록이고, 두 번째는 그가 폰다코 디 테데스키(베네치아에 있는 독일 상인들의 무역 장소)의 파사드를 *프레스코화로 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 역시 대부분 소실된 상태입니다. 조르조네는 이 프레스코화를 그릴 때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티치아노와 공동으로 작업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조반니 벨리니의 공방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500년 3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베네치아에 체류하며 자신의 그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조르조네와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후에 티치아노의 특징이 된 레오나르도의 ‘마니에라 모데르나’ 즉, ‘*스푸마토’ 기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세습 귀족이자 미술 전문가인 마르 칸토니오 미키엘의 기록 속에 베네치아의 개인 박물관에 있는 조르조네의 그림 일곱 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 네 점의 그림은 오늘날까지도 증명될 수 있으며, 그 가운데는 주요 작품인 <폭풍우>와 <세 명의 철학자>, <잠자는 비너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키엘에 따르면 <세 명의 철학자>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에 의해, <잠자는 비너스>는 티치아노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두 그림 모두 조르조네가 죽기 얼마 전에 착수했습니다.
1510년보다 조금 앞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전원의 합주>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조르조네의 작품인지, 티치아노의 작품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공동작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조르조네는 특히 폭풍우나 밤의 정취, 또는 일출과 같은 날씨와 관련된 현상들을 주로 묘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6세기 말에는 조르조네에 대한 신뢰할 만한 보고가 유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후 계속해서 높이 평가되어, 그의 작품은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남겨진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조르조네의 <폭풍우>는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1500년부터 1510년까지의 베네치아 회화에 있어서 위대한 변혁의 시기에 탄생되었습니다. 조르조네와 그의 동년배인 세바스티아노델 피옴보와 티치아노는 이 새로운 개혁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조르조네의 작품과 세바스티아노, 티치아노의 초기 작품 사이의 경계는 분명치 않습니다.
조르조네는 16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창시자로 일컬어집니다. 티치아노는 그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철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조르조네는 소수의 엘리트 주문자들을 위해, 당대의 대표적인 그림 주제들을 가지고 지적인 작품들을 창조해 냈습니다.
※ 프레스코
‘신선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fresco'에서 유래. 벽화 기법으로 아직 축축한 회벽 위에 색을 칠하게 된다.
※ 스푸마토(Sfumato)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물체의 윤곽선이 마치 안개 장막을 통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회화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을 고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마니에리슴
후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사조. 마니에리슴에서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주의는 의식적으로 제거되고, 종종 그 반대의 면이 추구되기도 했다. 그 특징은 인간의 신체를 길게 늘여 묘사하는 점, 복잡한 구성 그리고 인위적인 채색 등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개념은 극도로 섬세하고 정제된 모든 형태의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로, 이탈리아어의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중세를 극복하고 고대의 예술을 부흥시키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는 대략 1420년부터 1600년까지를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1500년까지를(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 1530년까지를(로마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 르네상스, 그리고 16세기 말까지를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마니에리슴으로 구분한다. 르네상스는 새 시대적인 인간상과 이성적인 자연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상을 창조했다. 예술가들은 수공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회화에 있어서 최상의 목표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토대로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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