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Jean-Honoré Fragonard
화가, 소묘 화가, 판화가였던 장 오노레 프레고나르는 1732년 프랑스 남부의 그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1738년 그의 가족들은 파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처음에 그는 샤르댕의 작업실에 들어갔다가, 1749년경에는 부셰의 작업실로 옮겼습니다. 1752년 부셰는 ‘로마상’을 위한 경쟁에 프라고나르가 응모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추천했고 프라고나르는 당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1753년부터 1756년까지 그는 왕립학교 에콜 로얄 에(École Royale des Protégés)를 다니다 마침내 장학생이 되어 로마에서 5년 간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58년에는 로베르를 아렉 되어, 그와 함께 로마 근교의 풍경을 스케치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그림은 양식상 거의 구분되지 않습니다.
1759년경 프라고나르의 첫 연애그림인 <강제적인 입맞춤>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1761년 이탈리아 체류를 종결하고,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그린 스케치는 초기 몇 년 동안에 생겨난 개인적인 주문 작품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특히 야콥 반 로이스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1765년 <코레소스와 칼리로에>라는 역사화로, 그는 ‘아그레제’(아카데미 입학을 위한 후보)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주도권을 쥐고 있던 비평가 드니 디드로는 이 그림에 열광하고, 프라고나르는 *역사화를 부흥시킨 인물로 칭송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라고나르는 그의 특권이 보장된 고상한 장르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그의 그림 중 가정적인 장면이나 연애 장면, 에로틱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더 잘 팔렸습니다. 1767년에 완성된 <그네>는 그의 전환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라고나르는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대신, 미술품 수집가들의 경박하고 외설스런 취향에 봉사했습니다.
1770년경에 그는 아주 빠르게, 탁월한 기법으로 그린 ‘스페인’의상을 입은 초상화로, 완전히 새로운 장르인 환상의 초상화를 전개했습니다. 몇 년 전 프라고나르가 ‘역사화’로부터 돌아섰던 사실에 대해 비난했던 디드로 역시 자신을 상상의 동물로 그려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나 교회로부터는 그리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1780년대에 프라고나르는 철저히 신화에 매달렸습니다. 그의 양식은 *고전주의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1789년 혁명의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그라스로 향했으나, 3년 후에 다시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대신, 루브르 궁전을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1809년에 사망했습니다.
프라고나르는 고도의 섬세함으로 궁정 문화를 표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네>는 몰락으로 이해될 수 있는 ‘앙시엥 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과 동의어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꾸민 듯한 부자연스러움’은 오히려 이 작품을 그 시대의 가장 솔직한 그림 중 하나로 만들고 있습니다.
※ 고전주의(Classicism)
넓은 의미로는 그리스의 고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예술 경향을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향으로서 탄생하여 약 1770년경부터 1830년까지 이어졌던 양식을 말한다. 고전주의의 기준은 고대의 예술, 특히 시대를 초월하여 유용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리스의 고대이다. 고전주의 회화와 건축의 특징은 엄격하고 분명한 구도와 단순한 형태 등이며, 무엇보다도 진지한 주제들이 다루어졌다.
※ 역사화
구약이나 신약, 신화 또는 역사를 소재로 한 그림. 수세기 동안 회화의 가장 고상한 장르로 여겨졌으나, 19세기 말에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 예술 후원자
부유했던 로마인 가이우스 마이케나스(B.C. 8년에 사망)로부터 유래. 그는 특히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같은 작가들을 후원했다. 예술적 동지, 후원자.
※ 풍속화(Genre, Genre Painting)
18세기 이래로, 일상 생활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과장 없이 표현한 회화를 가리킨다. 풍속화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민 미술 속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풍속화는 18세기 궁정 문화에도 등장하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사회적인 고발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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