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에두아르 마네는 182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한 시민 가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법학을 전공하다가 1850년에 에콜 데 보자르 국립 미술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1853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 그는 1856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를 여행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격찬에도 불구하고, 1856년 마네의 살롱전 첫 출품작인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은 거절당했습니다. 아마도 그 주제 때문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2년 후, 그는 특히 샤를 보들레르의 주목을 끌었던 <스페인 가수>를 전시했습니다. 마네는 자신의 개인적인 양식을 발견하기 시작했으며, 직업 모델인 빅토린 뫼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1862년의 <튈르리 궁의 음악회>와 <거리의 여가수>와 같은 그림들 속에서 그는 댄디즘을 받아들였고, <풀밭 위의 점심>에서처럼 여기서도 보들레르와의 밀접한 유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의 항변으로 1863년 낙선자 전시회가 개최되었습니다. <풀밭 위의 점심>은 비평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863년에 완성된 <올랭피아>도 1865년에 똑같은 일을 겪습니다. 이 그림은 마네가 스페인 여행에서 발견하게 되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가 지닌 자의식과는 전혀 다른 누드화로 간주되었습니다.
마네는 카페 게르부아에서 만난 젊은 화가 그룹인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1867년 국제 전시회에 초대받지 않은 마네는 자신의 작품들로 개인 전시회를 갖는데, 이 작품들에 대한 에밀 졸라의 논문인 「새로운 회화 방식-에두아르 마네」가 소책자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관중과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마네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에서 영감을 얻어 1868년에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전시와 유포가 금지되었습니다. 다음 해 마네는 그의 제자가 되는 베르트 모리조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고야의 작품을 모방한 <발코니>와 <아틀리에의 아침식사>가 살롱전에서 전시되었습니다.
1870년 경 카페 게르부아 화가들의 영향으로 마네의 작품은 밝아지기 시작하고 필법은 더 자유로워지는데, 이것은 1873년 작 <철도>에 잘 나타났습니다. 1874년에 마네는 게르부아 화가들의 첫 전시회에 대한 참가 요청을 받지만 거절했습니다. 1874년의 <아르장퇴유>는 살롱전에 받아들여졌지만, 1877년의 <나나>는 거절당했습니다. 마네가 병으로 장애를 얻게 되었던 1880년대에는 특히 작은 정물과 꽃을 그린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1881년 마네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고 1883년 파리에서 죽기 얼마 전에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색채는 마치 하나의 강철 톱처럼 두 눈 속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의 인물들은 어떤 완충 장치로도 약화시킬 수 없는 강도를 지닌 천공기로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다. 마네는 전혀 먹을 수 없는 풋과일들을 갖고 있다.” - E. 셰스노, <풀밭 위어 점심>에 대하여
때로는 *사실주의 화가로, 때로는 인상주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마네는 어떠한 양식에도 편입시킬 수 없습니다. 새로운 미술을 개척한 인상주의자들과의 영향은 상호적이었지만, 그들의 전시회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마네는 회화에서 대도시인들을 주제화한 최초의 화가였습니다. 그의 주제는 소외되고 개별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인상주의(Impressionism)
‘인상, 느낌’을 뜻하는 프랑스어 ‘impression'에서 유래.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해돋이>의 제목을 따서 명명되었던 1870년대의 프랑스 미술과 그 이후의 회화 양식.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와 바르비종 화파의 풍경화에서 출발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을 즉흥적이고 현상적인 형태로 포착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빛과 대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인상주의의 특징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인 플레네르(Plein-air)와 밝은 색채 사용이다. 그리고 벨라스케스와 터너의 지식을 전제로 하여 물체의 윤곽을 용해시키는 회화 방식도 종종 사용되었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인상주의가 수용되었다. 독특한 형색의 점묘 주의 역시 인상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사실주의(Realism)
넓은 의미로는 양식과 상관없이 현실에 충실한 묘사를 일컫는 명칭이다. 좁은 의미로는 19세기 중반경 프랑스에 등장했던, 밀레와 쿠르베의 사회 비판적인 미술 사조와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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