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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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정치,시사,경제

세계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건들

by 호아Hoa 2019. 5. 17.

세계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건들

 

‘도편 추방제’가 있던 아테네, 최초의 민주주의 탄생

기원전 6세기 말,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 중요한 나랏일을 결정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시민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국가를 관리할 대표를 뽑고 법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관리자는 귀종이나 평민의 구분 없이 제비뽑기로 선출됐고, 재판에서는 다수결을 통해 유죄와 무죄를 결정했습니다. 만약 권력을 함부로 사용한 사람이나 시민을 억압하며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이 있으면 도자기 조각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게 바로 ‘도편추방제’입니다. 이름이 가장 많이 적힌 사람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나라 밖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고대 아테네에서는 누구나 법 앞에 평등했고, 정치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이때부터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고라 광장에서 열리는 회의에는 18세 이상의 남자만 참가할 수 있었고 노예와 여성, 외국인은 절대 참가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영국의 명예혁명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신분에 따라 계급을 매기는 사회, 즉 봉건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왕과 귀족은 부와 권력을 누리는 데 반해, 농민과 노예는 가난에 시달리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1603년 영국의 국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왕권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제멋대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제임스 1시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은 찰스 1세와 찰스 2세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습니다. 국민을 대표해 법을 만들고 나랏일을 하는 의회를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영국 국민과 의회는 권력을 마음껏 휘두른 제임스 2세 대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를 왕위에 앉혔습니다. 이게 바로 1688년에 일어난 ‘명예혁명’입니다. 대부분의 혁명이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영국의 이 혁명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안항 명예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689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의회가 제출한 권리장전을 받아들였고, 이후 영국은 왕이 있긴 하지만 의회가 중심인 입헌군주제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재 영국의 의회 정치 모습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독립혁명

1600년대 초, 유럽 사람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중에는 특히 영국인들이 많았는데, 영국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습니다. 나라를 떠난 사람들에게 왜 도움을 주었을까요? 식민지를 개발하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국은 18세기 초까지 북아메리카에 13개의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영국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프랑스와 7년 동안 전쟁을 치렀고, 이 때문에 돈이 부족해지자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돈까지 빼앗기니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13개 식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의미로 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이게 바로 미국의 독립선언서입니다. 1776년에 발표한 이 선언에는 생명, 자유, 평등 등 인간의 기본권과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민주주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13개 식민지는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1781년에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독립 혁명 덕분에 미국은 물론, 세계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프랑스혁명은 1789년부터 1794년에 걸쳐 일어난 혁명으로, 민주주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운동입니다. 17세기 프랑스는 왕의 권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시대였습니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를 비롯해 루이 15세, 루이 16세는 한껏 사치를 부리며 화려한 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성직자·귀족·평민으로 신분이 나뉘었는데, 그 차별이 매우 심했습니다. 성직자와 귀족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권력을 부리는 데 반해, 평민은 정치에 참여도 못할뿐더러 늘 무거운 세금 부담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결국 극심한 차별을 견디지 못한 프랑스 평민들은 불평등한 신분제를 없애자며 거리로 몰려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뜻을 모은 프랑스 평민들은 대표를 뽑아 1789년에 국민의회를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강제로 없애려 했고,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혁명에 쓰일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혁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프랑스 사람들은 혁명을 반대하는 나라와 전쟁을 펼치는 등 자신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했습니다.

 

여성 및 흑인 참정권 운동

프랑스혁명 덕분에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를 대신해 나랏일을 맡길 대표를 뽑는 투표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25세 이상의 일정한 세금을 낸 남성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여성은 물론, 돈이 없는 노예와 식민지 백성들은 참정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여성들은 스스로 정치 조직을 만들어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이후 미국(1920년), 영국(1928년) 등에서도 연달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습니다.

한편, 1865년 링컨이 노예제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은 여전히 차별을 받았습니다. 흑인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특히 목사이자 철학 박사였던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은 수많은 흑인들을 이끌고 인권 운동을 펼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1964년, 비로소 인종은 물론, 피부색·종교 등에서 비롯된 차별을 폐지하겠다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마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참정권을 얻기 위한 운동을 펼쳤고, 마침내 1966년 흑인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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