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티치아노 Tiziano
본문 바로가기
공부/예술

[미술] 티치아노 Tiziano

by 호아Hoa 2019. 6. 25.

티치아노 Tiziano

사진 출처 : 네이버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1485년경(또는 그 이전)에 북이탈리아의 피에베 디카도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베네치아로 와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화가들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에게로 사사했습니다.

티치아노는 조르조네의 학생으로 또는 조르조네의 동료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베네치아에 있는 폰다코 디 테데스키의 건물 전면에 프레스코화를 공동으로 제작했습니다. 티치아노의 초기 작품은 양식상 조르조네의 작품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전원의 합주>는 조르조네의 작품인지 또는 티치아노의 작품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510년 조르조네가 세상을 떠나고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가 로마로 간 후, 티치아노에게는 더 이상 베네치아 내에서 이렇다 할 경쟁 상대가 없었습니다. 티치아노의 대작이라고 할 만한 첫 작품은 아직 조르조네를 상기 키시는 <성애와 속애> 뿐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1514년에 거행되었던 한 결혼식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다 조르조네로부터 해방되는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베네치아에 있는 프라리 교회를 위해 제작된 두 점의 거대한 제단화, 즉 1516~1518년 사이에 제작된 <성모승천>과 1519~1526년에 걸쳐 완성된 <페사로 가의 성모>입니다. 현세의 육체를 지닌 마리아가 약간의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성모승천>과, 대각선 구도인 <페사로 가는 성모>의 구성은 둘 다 그 원형이 없습니다. 이 시기에 티치아노가 로마를 방문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지만,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가 티치아노 작품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티치아노는 *마니에리슴에 의해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1520년대와 1530년대에 티치아노는 인기 있는 초상화가였습니다. 그는 베네치아가 아닌 다른 곳의 주문자들을 위해서도 일을 했습니다. 1530년과 1533년에 그린 카를 5세의 두 점의 초상화로 티치아노는 서유럽 전체에서 인기 있는 화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를 그릴 독점적 권리와 귀족의 작위를 부여받게 되고, 1541년부터는 연금 생활자가 되었습니다. 1543년에는 <손자와 함께 있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것은 권세욕과 음모에 대한 심리학적인 스케치라는 평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1548년의 <황제 카를 5세>를 그렸는데, 비극적인 인물의 위대함과 가치를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 스페인의 펠리페 2세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티치아노의 후기 작품 속에서는 신화적 또는 종교적 소재를 지닌 초상화가 억제되었습니다. 어두운 색조가 지배적이었으며, 부분적으로 손가락을 써서 색상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19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나타나게 되는 ‘자유’에 도달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티치아노는 16세기 베네치아 미술을 절대적으로 지배했던 화가입니다. 뒤를 잇는 화가들은 그의 심리학적인 초상화 해석에 결코 필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 마니에리슴

후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사조. 마니에리슴에서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주의는 의식적으로 제거되고, 종종 그 반대의 면이 추구되기도 했다. 그 특징은 인간의 신체를 길게 늘여 묘사하는 점, 복잡한 구성 그리고 인위적인 채색 등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개념은 극도로 섬세하고 정제된 모든 형태의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로, 이탈리아어의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중세를 극복하고 고대의 예술을 부흥시키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는 대략 1420년부터 1600년까지를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1500년까지를(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 1530년까지를(로마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 르네상스, 그리고 16세기 말까지를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마니에리슴으로 구분한다. 르네상스는 새 시대적인 인간상과 이성적인 자연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상을 창조했다. 예술가들은 수공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회화에 있어서 최상의 목표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토대로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 원근법의 종류

*가치 원근법, *대기 원근법, *중심 원근법

 

※ 가치 원근법

인물 크기를 그 가치에 따라 다르게 재현하는 묘사 방식. 특히 중세의 제단화에서 그리스도와 성자들은 주변 인물들과 봉헌자들보다 더 크게 묘사되었다. 이 가치 원근법은 르네상스와 함께 점차 사라진다.

 

※ 대기 원근법

대기의 혼탁함을 모방한 원근법이다. 배경으로 갈수록 물체의 윤곽이 불분명해지고 색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것으로 원근감을 나타내는 회화 기법이다.

 

※ 중심 원근법(중앙 투시 원근법)

시선의 진행 과정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회화 기법으로, 1420년경 피렌체에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고안하였다. 중앙 투시 원근법의 중요한 원칙은 물체의 연장선을 그을 때,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모든 선들이 소실점이라고 불리는 한 점에서 모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림 대상들을 포함하는 통일된 환영 공간이 생겨난다. 중앙 투시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성과들 중 하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