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아그놀로 브론치노 Agnolo Bronz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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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아그놀로 브론치노 Agnolo Bronzino

by 호아Hoa 2019. 6. 23.

아그놀로 브론치노 Agnolo Bronzino

사진 출처 : 네이버

아그놀로 브론치노는 1503년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몬티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수공업 일을 하던 한 무명 화가의 공방에서 도제 생활을 한 후, 폰토르모의 공방으로 들어갔습니다. 1523~1526년 브론치노의 첫 작품들은 스승의 감독하에 피렌체 근처의 카르토우센스 교단의 수도원인 체르토사 델 갈루초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계속해서 ‘폰토르모적 색채가 강한’ 일련의 종교화들이 탄생하는데, 그 작품들을 브론치노의 것으로 인정하는 데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습니다.

3년 간의 공격이 있은 후, 마침내 1530년 황제 카를 5세의 군대는 피렌체를 점령했습니다. 주문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브론치노는 고향을 떠나 잠시 동안 페사로로 가서 우르비노의 귀도발도 궁정에 머물렀습니다. 이때부터 브론치노는 스승의 스타일에서 해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브론치노는 1532년부터 폰토르모와 함께 카스텔로와 카레지 저택의 *프레스코화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것이 *메디치 가를 위한 브론치노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1530년대에 그는 피렌체에서 초상화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1538년 그는 ‘붓에 대하여’라는 뜻을 지닌 자신의 시 모음집 『델 페넬로(Del pennello)』를 펴냅니다.

1537년 이후 피렌체의 공작인 메디치 가의 코시모 1세와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의 결혼은 브론치노에게는 예술가적인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결혼식 축제 행사를 위한 화려한 장식으로써 그는 코시모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그 결과 궁정화가가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그가 받은 첫 번째 중요한 주문은 팔라초 베키오에 있는 엘레오노라의 예배당 장식이었습니다. 그는 1550년 벽걸이 양탄자를 위한 밑그림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팔라초 베키오에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브론치노는 <비너스와 아모르>를 제외하고는 신화적 내용을 담은 다른 중요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브론치노는 그의 가장 유명한 벽걸이 양탄자 연작 속에서 코시모 1세의 생애와 통치를, 이교도적인 헤라클레스의 전설이 아니라 성경의 요셉 이야기와 동등시 하여 묘사했습니다. 브론치노의 모든 작품 속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초상화가로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코시모 1세와 그 가족들의 열두 점의 초상화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차갑고 접근하기 어려운 유려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개인의 인품 해석이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의 묘사가 요구되었습니다. 브론치노의 탁월한 초상화 기법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1550년대 중반 조르조 바사리는 브론치노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1560년 이후 브론치노에게는 초상화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브론치노는 1572년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브론치노 시대의 사람들은 브론치노의 탁월한 기법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는 메디치 궁정의 분위기를 가장 잘 포착하고 해석한 화가였습니다. 신화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복잡 다양성은 지적인 궁정 문화를 위한 *마니에리슴의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이며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르네상스 시대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프레스코(fresco)

‘신선한’ 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fresco'에서 유래. 벽화 기법으로 아직 축축한 회벽 위에 색을 칠하게 된다.

 

※ 마니에리슴(Mannerism)

후기 르네상스의 중요한 사조. 마니에리슴에서 전성기 르네상스의 이상주의는 의식적으로 제거되고, 종종 그 반대의 면이 추구되기도 했다. 그 특징은 인간의 신체를 길게 늘여 묘사하는 점, 복잡한 구성 그리고 인위적인 채색 등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 개념은 극도로 섬세하고 정제된 모든 형태의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 반 종교개혁

16세기 중반 가톨릭 교회는 신도들을 다시 강하게 결속시키고, 독일과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개신교로 이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교회 내부의 개혁과 더불으, 1563년 이탈리아 트렌티노 공의회에서 결정된 통제 경제적인 조처들도 함께 행해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종교재판의 부활로 이어졌다. 반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사람은 스페인의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인데, 그는 예수회를 설립하고 1540년 교황으로부터 예수회에 대한 승인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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