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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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by 호아Hoa 2019. 6. 18.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사진 출처 : 네이버

디에고 로드리게스 데 실바 이 벨라스케스는 15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났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연한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세비야에서 가장 훌륭한 화가이자 종교재판소의 미술 검열관이었던 프란치스코 파체코에게 도제로 보냅니다. 1617년 그는 도제 수업을 마치고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회화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종교화를 그리게 되나, 정물화와 풍속화가 혼합된 그림들도 그렸습니다. 그것은 회화의 등급으로 보면 최하위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림들의 소재는 <물장수>에서처럼, 일상생활로부터 취했습니다.

1621년 펠리페 4세가 스페인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벨라스케스는 1623년 여름 파체코의 권유로, 그 나이 어린 왕을 그리기 위해 마드리드로 소환됩니다. 같은 해에 벨라스케는 ‘궁정화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계속해서 화가로서, 그리고 궁정인으로서 지위가 상승했습니다. 그는 통치자와 그 가족들의 ‘선전 활동’을 위한 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또한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티치아노의 작품이 포함된 국왕의 미술 소장품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628년 루벤스는 마드리드에 있었습니다. 그는 벨라스케스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권하였고, 신화를 소재로 한 그의 첫 번째 위대한 작품 <바쿠스의 승리>를 그리도록 자극했습니다. 1629년 여름 루벤스가 이탈리아로 떠난 직후, 벨라스케스도 이탈리아로 출발했습니다. 그곳에서 제작된 그림들 중 <불카누스의 대장간>은 펠리페 왕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630년과 1640년에는 왕실 가족, 특히 펠리페 4세의 가족들을 실물 크기로 그린 많은 초상화들이 제작되었습니다. 1631년에 벨라스케스는 <난쟁이와 함께 있는 발타사르 카를로스>라는 2인 초상화를 그렸고, 1634년경에는 여러 화가들이 참여했던 전투화 연작의 일부인 <브레다 성의 항복>을 완성했습니다. 1650년대 초반에 벨라스케스는 두 번째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그의 회화는 그 전성기에 도달했습니다. 이때 그의 독자적인 <자화상>이 탄생했습니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1651년에는 <왕녀 마리아 안나>와 <왕녀 마르가리타>, <라스 메니나스>와 같은 고전적인 초상화들이 제작되었습니다. 1658년 벨라스케스는 기사 작위를 받게 되는데, 이로써 그는 궁정의 서열상 상당히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1660년에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벨라스케스는 17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접적인 후계자를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고야가 1778년 <라스 메니나스>를 판화로 제작한 바 있으며, 마네는 그의 회화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라스 메니나스>에 직접적으로 심취했던 20세기 화가로는 피카소와 달리를 들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폐하, <라스 메니나스>는 회화에 있어서 하나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그(카를로스 2세의 궁정화가)는 신학이 모든 학문들에 우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이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 안토니오 팔로미노, 1724

사진 출처 : 네이버

※ 17세기 스페인 미술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얻게 된 축복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페인의 정치와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회 조직들이 보다 단단해지고, 종교재판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결국 18세기에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퇴보한 국가가 되었고, 문학과 오페라 작품 속에서 이웃 국가들의 조소거리로 전락한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스페인의 조형미술은 완전히 다른 전제하에서, 융성한 네덜란드의 시민 미술과 같이 황금기를 경험했다.

 

※ 인상주의(Impressionism)

‘인상, 느낌’을 뜻하는 프랑스어 ‘impression'에서 유래. 모네의 1872년 작품 <인상-해돋이>의 제목을 따서 명명되었던 1870년대의 프랑스 미술과 그 이후의 회화 양식. 인상주의자들은 사실주의와 바르비종 화파의 풍경화에서 출발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의 대상이나 상황을 즉흥적이고 현상적인 형태로 포착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빛과 대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인상주의의 특징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인 플레네르(Plein-air)와 밝은 색채 사용이다. 그리고 벨라스케스와 터너의 지식을 전제로 하여 물체의 윤곽을 용해시키는 회화 방식도 종종 사용되었다. 영국과 독일에서도 인상주의가 수용되었다. 독특한 형색의 점묘 주의 역시 인상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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