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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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by 호아Hoa 2019. 6. 15.

토머스 게인즈버러 Thomas Gainsborough

사진 출처 : 네이버

게인즈버러는 1727년, 영국 동부의 백작령인 서퍽 주의 한 작은 마을 서드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편력 화가들에게서 처음으로 그림 수업을 받았습니다. 1740년경 그는 런던으로 가서 바토와 친분이 있는 하버트 그라벨로트와 프랜시스 헤이만에게서 미술을 배웠습니다. 또한 그보다 몇 년 전에 윌리엄 호가스가 설립한 런던 화가들의 공개 토론장이었던 세인트 마틴스 레인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게인즈버러는 간혹 *아카데미의 회합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그라벨로트의 초상 판화에 장식적인 틀을 그려 넣는가 하면 연극 공연을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고, 돈을 매우 빨리 벌게 됩니다. 1746년에 그는 보퍼트 공작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게인즈버러의 초기 작품인 ‘범퍼’라고 불리는 불테리어의 그림은 그가 결혼하기 전 해에 그려진 것입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게인즈버러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후 1748년에 서드베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아마도 런던의 경쟁에서 오는 압박감을 모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1751년까지 게인즈버러는 고향에 정주하고 그 속에서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에게 모범이 되었던 인물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 특히 야콥 반 로이스달이었습니다. 물론 초상화는 돈벌이가 좋은 분야였습니다. 이 무렵 <로버트 앤드루스와 그의 아내 메리>의 2인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게인즈버러는 자신의 그림을 위한 더 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1752년 가까운 무역 도시인 입스위치로 옮겨갔습니다. 1759년 브리스톨의 남쪽 요양지인 바스로 가서 고위계층의 화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의 양식은 안토니 반 데이크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무렵 수많은 초상화와 풍경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게인즈버러는 런던으로 가서 신분이 높은 폴 몰의 집에 입주했습니다. 런던에서 성공적인 화가로서 보낸 처음 몇 년은 게인즈버러가 그 설립 멤버였던 왕립 아카데미와의 논쟁의 시기였습니다. 그가 아카데미의 관례를 무시하고 그린 그림들이 원인이었습니다. 1777년 그는 <명예로운 토머스 그라함 부인>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770년대 말에 게인즈버러는 시골을 무대로 한 대작들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그림들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는 1788년 임종의 순간에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조수아 레이놀즈에게 그러한 그림들 중 하나인 <나무꾼>을 보여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일찍이 이 나라가, 영구 고하파의 명예로운 지휘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천부적 재능의 화가들을 배출했다고 한다면, 그러한 명성을 지닌 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게인즈버러의 이름이 미술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조수아 레이놀즈, 1788년 12월

 

※ 아카데미

플라톤의 학원에 대한 명칭. 이 학원은 영웅신 아카데모스의 신역에 있는 작은 숲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최초의 근대적 아카데미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학문과 예술 형성의 중심지로 설립되었다. 절대주의 시대에 유럽 전역에서는 1648년 파리에 설립된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의 전형에 따라 아카데미들이 번성했다. 19세기에 이르자 왕립 아카데미들은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갔다. 그들의 지도 방법은 지나치게 교조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며, 진보적인 미술가들은 그들의 강요된 취향에 반기를 들었다. 곧 사설 교육 기관들이 설립되었는데, 그중에는 파리의 ‘쥘리앙(Julian)’과 ‘쉬스(Suisse)'가 가장 유명하다.

 

※ 르네상스(Renaissance)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로, 이탈리아어의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으로, 중세를 극복하고 고대의 예술을 부흥시키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시기는 대략 1420년부터 1600년까지를 포함하며, 일반적으로 1500년까지를(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 1530년까지를(로마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 르네상스, 그리고 16세기 말까지를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마니에리슴으로 구분한다. 르네상스는 새 시대적인 인간상과 이성적인 자연 인식에 바탕을 둔 세계상을 창조했다. 예술가들은 수공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회화에 있어서 최상의 목표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과 해부학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토대로 자연을 모사하는 것이었다.

 

※ 풍속화(Genre, Genre Painting)

18세기 이래로, 일상 생활에서 주제를 선택하여 과장 없이 표현한 회화를 가리킨다. 풍속화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민 미술 속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풍속화는 18세기 궁정 문화에도 등장하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사회적인 고발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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