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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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by 호아Hoa 2019. 6. 9.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사진 출처 : 네이버

자크 루이 다비드는 17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소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처음에는 건축가의 길을 걸었으나, 곧 미술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먼 친척이 되는 부세는 1766년 그에게 파리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는 1771년에 로마 장학금을 위한 아카데미 응모전에서 2등을 하고, 1775년에는 푸생의 모범에 따른, 형식적이고 극적인 명백함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작품으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탈리아 미술, 즉 라파엘로, 카라바조, 그리고 로마 후계자들의 미술을 처음 접했을 때, 다비드는 하나의 예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취향, 정신에서 ‘원시적인 것’을 추방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예술적 위기감 속에서, 그는 1779년 나폴리와 폼페이를 여행했습니다. 이 여행은 해방의 일격이 되었습니다. 다비드는 다시 방향을 설정하고, 예술의 혁신은 단지 고고학적으로 확증된 *고전주의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고대의 조각 작품과 호머의 발견은 그의 회화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라의 죽음>에서는 정서적 감동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죽은 영웅과 극단적 *사실주의, 어두운 조성 등의 소재가 사용되었습니다. 1780년 여름 다비드는 파리로 돌아가서, 로마에서 획득한 이상적인 고전주의 양식에 상응하는 공식적인 미술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때부터 다비드에게 회화의 과제란 도덕과 국가의 명예를 촉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구걸하는 눈먼 벨리사르>와 <헥토르를 애도하는 안드로마케>,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와 같은 그림들은 혁명 이전 시기의 주요 그림들입니다. 혁명의 발발 후 다비드의 정치적인 성향은 과격해졌습니다. 그는 수많은 ‘혁명의 축제’를 위한 선전원이자 고대 양식을 모방한 연출가가 되었습니다. 의회의 일원으로서 다비드는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수많은 사형 판결에 동의했습니다. 1793년,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마라의 죽음>이 제작되었습니다. 1795년 다비드는 혁명으로부터 돌아서서 ‘진실된’ 고대 양식으로 회귀하였고, 1799년에 <사비니 여인의 중재>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열띤 추종자가 되어, 1801년에는 <생 베르나르를 넘는 보나파르트>로, 1806년경에는 웅장한 <나폴레옹의 대관>으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다비드는 1814년경에 수립된 부르봉 왕조의 신·구 정권과는 더 이상 일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브뤼셀로 돌아가서, 1825년 사망할 대까지 초상화가로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의 창시자인 다비드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가입니다. 그의 미술은 선전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그는 앙시엥 레짐 말기에 시민들의 도덕적·정치적 요구를 지지했고, 혁명과 나폴레옹을 예찬했습니다. <마라의 죽음>은 역사화, 초상화 그리고 영웅적 기념비가 한데 합쳐진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고전주의(Classicism)

넓은 의미로는 그리스의 고대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예술 경향을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한 반향으로서 탄생하여 약 1770년경부터 1830년까지 이어졌던 양식을 말한다. 고전주의의 기준은 고대의 예술, 특히 시대를 초월하여 유용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리스의 고대이다. 고전주의 회화와 건축의 특징은 엄격하고 분명한 구도와 단순한 형태 등이며, 무엇보다도 진지한 주제들이 다루어졌다.

 

※ 사실주의(Realism)

넓은 의미로는 양식과 상관없이 현실에 충실한 묘사를 일컫는 명칭이다. 좁은 의미로는 19세기 중반경 프랑스에 등장했던, 밀레와 쿠르베의 사회 비판적인 미술 사조와 관련된다.

 

※ 제국 양식

나폴레옹 제국 시대(1804~1815)의 고전주의적인 장식 양식. 제국 양식 속에서 고전주의적인 형식은 종종 웅장함으로 고조된다. 제국 양식의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극을 준 사람은 자크 루이 다비드였다.

 

※ 상 퀼로트 제지(Sans-Culotte-Jèsus)

원래는 혁명가를 가르키는 풍자적 표현이었던 상 퀼로트는 프랑스혁명 당시 글자 그대로 ‘퀼로트(무릎 바지, 귀족들이 입었던 바지)를 입지 않았던’ 공화주의자를 일컫는 명칭이 되었다. 마라의 죽음 이후 혁명을 위한 하나의 거짓된 종교적인 순교 우상이 매우 빠르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현상이 다비드의 그림을 통해서 촉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거짓된 종교적인 순교 우상은 민족적인 ‘상 퀼로트 제지’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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