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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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예술

[미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by 호아Hoa 2019. 7. 3.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1415년 이탈리아 아레초 근처의 보르고 산세폴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수련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1430년대에 고향에서 일했던 그는 1439년경 피렌체로 이주했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몇 년 간 그보다 연장자인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와 공동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입증되었습니다. 피에로는 도메니코로부터 명확한 회화 구조와 성모 모습의 유형에 대해 전수받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445년 피에로는 그의 첫 번째 주문작을 그리게 됩니다. 그는 고향의 한 자선 교단을 위해 <미제리코드리아 제단화> 또는 <자비의 제단화>를 그립니다. 제단의 중앙에는 자신의 옷자락 아래에 있는 신도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보호의 외투 자락을 펼친 성모> 유형의 마리아가 서 있고 성모의 곁에는 성자들이 서 있습니다. 산세폴크로의 대성당을 위해 그린 제단화 가운데는 오직 <요단 강에서의 그리스도의 세례식>이 남아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서 피에로의 관심이 빛과 *원근법적인 구성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449년경 피에로는 그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 중 하나인 <그리스도 태형>을 그립니다. 이 그림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왼쪽의 배경에는 그리스도가 채찍 기둥에 묶여 있고, 오른쪽 부분의 전경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서 있습니다.

1450년대에 피에로는 아레초의 프란체스코 성당에 <십자가 전설>을 그리게 됩니다. 1458년경 피에로는 다시금 산세폴크로의 공회당에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스코화 <부활>을 그립니다. 이 그림에는 완벽한 위엄과 품위를 갖춘 그리스도가 석관에서 나와 한 발을 그 위에 올려놓고 시선은 앞쪽으로 고정시킨 채, 손에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460년대에 피에로는 산아고스티노와 페루지아를 위해 각각의 제단화를, 그리고 계속해서 <수태한 마리아>를 그립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1469년 피에로는 페데리고 다 몬테펠트로의 궁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페데리고와 피에로는 수학과 원근법에 대한 서로의 관심을 나눕니다. 피에로는 페데리고로부터 ‘회화적 원근법’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1470년대 초 그는 <페데리고 다 몬테펠트로와 그의 아내 바티스타 스포르차의 2인 초상화>와 <몬테펠트로 제단화>를 주문받습니다. 피에로의 후기 작품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묘사 방식에 있어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에로는 1492년 고령의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 원근법의 종류

*가치 원근법, *대기 원근법, *중심 원근법

 

※ 가치 원근법

인물 크기를 그 가치에 따라 다르게 재현하는 묘사 방식. 특히 중세의 제단화에서 그리스도와 성자들은 주변 인물들과 봉헌자들보다 더 크게 묘사되었다. 이 가치 원근법은 르네상스와 함께 점차 사라진다.

 

※ 대기 원근법

대기의 혼탁함을 모방한 원근법이다. 배경으로 갈수록 물체의 윤곽이 불분명해지고 색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것으로 원근감을 나타내는 회화 기법이다.

 

※ 중심 원근법(중앙 투시 원근법)

시선의 진행 과정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회화 기법으로, 1420년경 피렌체에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그의 동료들이 고안하였다. 중앙 투시 원근법의 중요한 원칙은 물체의 연장선을 그을 때,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모든 선들이 소실점이라고 불리는 한 점에서 모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림 대상들을 포함하는 통일된 환영 공간이 생겨난다. 중앙 투시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성과들 중 하나이다.

 

※ 북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문화 교류

15세기에는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네덜란드 도시들 사이에 상업적인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인들은 네덜란드인들의 유화 기법과 풍경화 기법에 매료되었다. 페라라와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도 1450년경에 이러한 그림들을 그렸고, 1483년에는 브뤼게에서 세력을 떨치던 메디치 가의 토마소 포르티나리가 후고 반 데르 후스에게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누오바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제단화를 그려줄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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